‘2012 대전․충청지역 경제민주화를 위한 과제와 전망’
※ 일 시 : 2012년 10월 18일(목) 14시-18시
※ 장 소 : 목원대학교 U관(사범관) 408호
※ 주 최 : 충남대학교 시민사회연구소 ․ 대전발전연구원 ․
충남발전연구원 ․ 대전시민사회단체회의
※ 주 관 : 대전시민사회연구소
※ 후 원 : 대전발전연구원 ․ 충남발전연구원 ․ 유성구청장
▷ 토 론 회 일 정 ◁
[1부] 개 회 (14:00~14:30) 사회 : 김 종 남 (대전시민사회연구소 부소장)
▪ 개 회 사 : 장 수 찬 (대전시민사회연구소 이사장)
▪ 환 영 사 : 김 원 배 (목원대 총장)
박 진 도 (충남발전연구원장)
이 창 기 (대전발전연구원장)
[2부] 학 술 대 회 (14:30~16:00)
▪ 14:30〜14:50 기조 발제 - 정 세 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 경제민주화의 과제와 전망 ◈
▪ 14:50〜15:10 제 1 발제 - 장 주 영 (대전 청년 유니온 위원장)
◈ 대전․ 충청지역 청년실업과 대책 방안 ◈
▪ 15:10〜15:20 휴 식
▪ 15:20〜15:40 제 2 발제 - 김 제 선 (대전 풀뿌리 시민센터 상임이사)
◈ 사회경제와 지역발전 ◈
▪ 15:40〜16:00 제 3 발제 - 정 용 길 (충남대 경영학과교수)
◈ 대전 ․ 충청지역 중소상인 정책의 현실과 과제 ◈
▪ 16:00〜16:20 휴 식
[3부] 종 합 토 론 (16:20~18:00) 사회 : 이 현 주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의장)
이영훈 (민주일반연맹지역노동조합 사무처장) / 이광진 (대전경실련사무처장)
황혜란 (대전발전연구원 도시경영연구실장) / 신동호 (충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최선희 (충남사회경제네트워크 사무처장) / 서인식 (IT벤처 기업가)
[4부] 만 찬 (18:00~ ) 목원대 정문 앞 ‘샤브한쌈’ (042-826-4413)
차 례
기 조 발 제
경제민주화의 과제와 전망
/ 정 세 은 (충남대 경제학과) ․ 1
제 1 발제
대전․ 충청지역 청년실업과 대책 방안
/ 장 주 영 (대전 청년 유니온 위원장) ․ 21
제 2 발제
사회경제와 지역발전
/ 김 제 선 (대전 풀뿌리시민센터) ․ 33
제 3 발제
대전 ․ 충청지역 중소상인 정책의 현실과 과제
/ 정 용 길 (충남대 경영학과) ․ 61
경제민주화의 과제와 전망
정 세 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Ⅰ. 2012 대선의 주요 아젠다, 경제민주화
주요 대선주자 3인이 출마선언을 마침으로써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접어들었다. 세 후보 모두 경제문제의 핵심 아젠다로 ‘경제민주화를 꼽고 있다. 출마선언문에서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는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각각 3차례, 2차례, 1차례 구사했다.
박근혜 후보의 연설문에서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계획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는 국민 행복의 첫걸음입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함께 성장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차별 없이 대우받도록 하겠습니다. 경제적 약자도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만들겠습니다”라고 원칙을 선언하는 데 그쳤다.
문 후보의 연설문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재벌에 대한 견제·규제 뜻을 분명히 밝혔다. “변화의 새 시대로 가는 세 번째 문은 경제민주화의 문입니다. 경제민주화는 시대적 명제입니다. 저 문재인이 그 문을 열겠습니다.” 특히 재벌 문제와 관련해 “재벌 관련 제도를 확실히 정비하겠습니다. 재벌의 특권과 횡포는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재벌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길을 찾겠습니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겠습니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공존·공생’을 통해 일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대접받게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안철수도 출마선언에서 지난 7월 출간한 저서 <안철수의 생각>의 표현한 것 이상으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담지 않았다.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뀔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정치가 들어서야 민생경제 중심 경제가 들어섭니다. 대한민국은 새로운 경제모델이 필요합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성장 동력과 결합하는 경제 혁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는 시대정신과 그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먼저 자신이 왜 출마하며 어떤 경로로 결심을 굳히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경제민주화가 주요 아젠다로 대두되면서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찬성한다, 반대한다는 입장 표명도 뜨겁지만 사실 아직까지도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한 면이 존재한다. 경제민주화가 제기된 배경은 양극화 현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대기업, 중소기업 간 양극화, 자본과 노동 간 양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경제적 격차가 심각하다는 인식이 국민들 간에 존재한다. 그러한 양극화의 스펙트럼의 한 극단에는 재벌이 존재하고 다른 한 극단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경제민주화란 이와 같은 양극화된 경제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경제민주화 논의가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인가?
Ⅱ. 정치권에서 논의되어 온 경제민주화의 내용
경제민주화 논의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그간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돌이켜 보자. 경제민주화가 본격 등장한 것은 2011년이다. 민주당이 출범시킨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 특별위원회’가 11월 17일에 경제민주화를 위한 10대 핵심정책을 제안했다. 위원회가 헌법 119조를 위원회 이름에 포함시켰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양극화 위기에 대한 해결 방안을 헌법 119조 2항으로부터 이끌어내고 있다. 헌법 119조는 다음과 같다.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화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로 규정하고 있고, 제2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를 규정하고 있다.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 특별위원회’는 2항의 ‘적정한 소득의 분배’는 분배정의를,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는 공정경쟁을, ‘경제주체간의 조화’는 참여경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다음의 10가지 핵심 과제를 제안했다.
1. 미국식 입학사정관제 대신 기회 균등 선발제를 도입하여 교육에서 공정한 기회를 보장한다.
2. 출총제 부활, 순환출자 금지 및 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한다.
3. 일감몰아주기를 근절한다.
4. 중소기업단체에 하도급 분쟁조정협의권을 인정해 준다.
5. 정규직을 확대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으로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한다.
6. 정리해고제도를 개선한다.
7. 금산분리를 강화하고 계열분리청구제를 도입한다.
8. 금융감독을 개혁하여 독립적인 금융소비자기구를 신설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9. 종업원대표의 이사추천권을 부여한다.
10.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소득 구간을 신설한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은 4월 총선에서 경제민주화 의제를 뚜렷하게 부각시키지 못하고 단지 정권교체만을 내세우다가 다수당의 자리를 새누리당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대선이 다가오자 의제 선점을 위하여 7월 6일에 다시 ‘경제민주화포럼’을 띄웠다. 창립식에서 강연을 한 유종일 KDI 교수는 경제민주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특권적 성장 동맹에 대항하는 경제민주화동맹을 구축해야 한다고 하며, 구체적인 방안으로 노동자와 농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 그리고 시민사회의 연대와 협력을 조직하는 동맹 형태를 언급했다. 경제민주화의 관점에서 시장개혁은 단순한 시장자유화가 아니라 시장민주화여야 하는데, 그것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권리 강화, 재벌개혁과 중소기업의 교섭력 강화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경우 재벌개혁을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대선이 본격화되면서 경제민주화 공약도 점점 구체성을 띄어가고 있는데 재벌정책이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10월 11일에 "참여정부 시절 재벌개혁 정책이 흔들렸고 그 결과 재벌공화국의 폐해가 더 심화됐음을 잘 알고 있다. 두 번 다시 실패하지는 않겠다"며 재벌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재벌 계열사 간 신규 순환출자는 즉시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는 유예기간(3년) 내 해소하되 미이행 시 해당 순환출자분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이행 강제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담합, 부당지원 사건을 검찰도 고발할 수 있도록 공정위 전속 고발권을 폐지할 방침이다.
민주통합당이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세워 지지율 상승을 도모하게 되자 새누리당도 작년 12월 26일 김종인 전 경제수석을 위원으로 영입하면서 ‘경제민주화’를 띄우기 시작했다. 김종인은 부동산실명제와 토지공개념 도입을 주도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재별개혁론자’로 알려져 있다. 이후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대표 공약인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내세워 총선을 승리고 이끌었다. 이후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을 출범시키고, ‘경제민주화’를 대선 3대 공약에 포함시켰다.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은 재벌과 관련하여 최근까지 경제사범 처벌강화, 일감몰아주기 금지, 순환출자 금지, 배임·횡령시 금융사 대주주 자격박탈, 금산분리 강화를 제안했고 이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한편 지난 8월 30일에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선대위의 양대 축이 될 국민행복특위와 정치쇄신특위가 가동되었다. 이 중 국민행복특위 위원장에 임명된 김종인은 금산분리 강화(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등 경제민주화를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핵심 공약으로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국민 통합을 위한 우선 과제로 양극화 해소에 초점을 두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재벌 개혁 외에 노동시장 쪽도 자세히 들여다볼 예정”이라며 “특히 비정규직 차별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해법을 만들어 내놓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경제민주화를 재벌개혁으로만 한정짓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오늘날 경제위기와 양극화 문제는 통제를 잃은 시장의 지나친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탐욕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제어해 효율과 안정을 끌어내는 게 경제민주화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의 ‘경제민주화’의 재벌개혁 방향을 놓고 당내 강온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아직까지 어떤 정책들을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끌고 나갈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장 재벌개혁을 둘러싸고도 의견들이 충돌하고 있다. 재벌개혁에 비판적인 이한구 원내대표는 "'경제민주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학술적으로 문제가 있는 용어다”라고 비판적 시각을 내비쳤다.
Ⅲ. ‘경제민주화’ 등장 배경이 된 재벌 체제의 문제점
‘경제민주화’에 대해 학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고 단지 대선용 정치용어에 불과하다는 입장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판이 정체불명의 경제 민주화니 하며 포퓰리즘 경쟁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기업의 의욕이 떨어지고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는 이한구 원내대표의 말은 그러한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즉 정권을 장악하고자 하는 정치인들이 재벌과 부자를 적으로 삼고 경제민주화란 정치슬로건을 내걸어 민심을 혼란시킨다는 것이다.
‘경제 민주화’란 상호모순적인 용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은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사상이니 경제 민주화는 경제 문제가 국민의 뜻에 따라서 결정되게 하자’는 의미일 것이고, ‘국민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은 소비자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므로 소위 ‘소비자 주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경제적 민주주의란 소비자의 선호에 의해 경제가 통제되는 것을 말하며, 재화를 더 강렬하게 원하는 사람은 더 많은 돈을 지불하여 더욱 크게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본다. 한다. 즉 ‘1원 1표’주의를 통해 선호의 강도도 반영되는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경제 민주화가 이와 같이 소비자 선택권, 소비자 주권으로 해석되는 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인데, 현재 논의되는 ‘경제 민주화’는 이와 달리 경제 문제의 처리에서 정부가 정치적 민주주의 방식, 곧 과반수 민주주의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에 문제가 된다고 본다. 정부가 입법으로 대기업 출자 총액을 제한하고, 순환 출자를 금지하고, 금산 분리하고,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정하고, 일감 몰아주기를 금하고, 재벌 내부 거래를 막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은, 경제 문제에 이렇게 정치적 민주주의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므로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과 기업가들은 경제 문제에 다양한 선호들을 가지고 있는데 선호가 다양한 경제 문제에 과반수 민주주의를 적용하면 어떤 대안으로 결정되든 하나의 대안으로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그 대안을 선호했던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사람들은 불만을 느끼게 된다. 많은 사람들의 뜻이 배반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호가 다양한 경우는, 즉 국민들의 뜻이 다른 경우는, 과반수 민주주의를 사용할 것이 아니라 시장에 의해 처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의 상이한 선호들에 맞춰 재화들이 제공되는데, 모든 소비자들의 선호가 충족될 때에만 의미에서 진정한 경제적 민주주의가 달성된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반대하는 또 다른 근거는 이 개념이 과거 존재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한 때 사회주의 이념이 강력했던 독일에서만 사용되었고 오늘날에는 독일에서조차 자주 사용하지 않게 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원래 개념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재벌개혁을 이 용어를 이용해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라는 주장이다. 독일에서의 경제민주화는 20세기 초,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그 이념가들과 경쟁했던 번슈타인(E. Bernstein)과 나프탈리(F. Naphtali) 등이 최초로 주창한 사회민주주의의 핵심 요체였다고 한다.
사회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의 독재는 자본과 대기업이고 마르크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이고 소련식 계획경제는 소수 엘리트의 독재이다. 그런데 사회민주주의는 그 어떤 유형의 독재에도 반대하며 노동자들이 경제적 삶에서도 자본가와 똑같이 참여하지 않고는 사회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경제민주화이며,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경제적 삶에서도 참여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경제민주화는 두 가지로서 노동자의 경영참여제도와 일종의 노·사·정 위원회라고도 부르는 협조적 행위제도이다.
그런데 김종인이 바로 독일로부터 이러한 ‘경제의 민주화(Demo- kratisierung der Wirtschaft)’를 배워 1987년 9차 개정된 현행헌법 제119조 제2항에 도입하였고 한다. 그러나 독일에서 사용되었던 원래의 의미가 아닌 ‘대기업 규제’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어서 경제민주화가 잘못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119조 2항을 아무리 읽어봐도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규제 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가 없으므로 대기업규제 등을 뜻하는 경제민주화에는 헌법적 정당성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민주화’를 대선용 정치용어에 불과하다고 폄하할 수는 없다. 또한 ‘경제민주화’를 소비자주권 쯤으로 이해하거나 독일에서 의미했던 노동자의 경영참가만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제민주화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나 결과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하며 이러한 문제가 제기된 배경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현재 심각한 양극화, 노동의 불안정, 생존권 위협 등을 겪고 있으며 특히 재벌들이 사회적 책임을 무시하는 경영행태가 중요 원인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연일 보도되는 기사들은 재벌들이 한국 경제에 얼마나 많은 잘못들을 행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재벌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하지만 그와는 거리가 먼 일들을 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특히 친기업적 정부인 이명박 정부 하에서 더욱 심각해졌다.
우선 재벌들은 노동자들을 쉽게 쓰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여기고 있다. 예를 들어 현대차의 경우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법원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는데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불법적인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사용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 사용하면 임금을 적게 주면서도 원하는 때에 손쉽게 노동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월 ‘현대차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나온 뒤 “판결을 존중하겠다”던 현대자동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할 수 없고 협상 대상도 아니다”라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은 최병승씨 개인에 대한 판결로, 현대차 전체에 적용하기 힘들다”며 “불법파견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고, 소송으로 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청노동자 1900여명이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1심 판결도 나오지 않고 있어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으려면 적어도 4~5년 이상은 걸릴 것으로 보여 노동자들이 이러한 장기간의 소송을 견디어낼지가 문제이다.
사측은 8월 12일에는 사내하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안을 제시했는데 불법파견이란 말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회사는 2016년까지 해마다 정규직의 정년퇴직으로 비는 자리 등에 단계적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를 신규 채용하겠다는 방침과 함께 채용 규모는 노사가 협의하자고 제안했다. 회사는 또 앞으로 정규직을 채용할 때 사내하청을 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회사안은 비정규직노조한테 불이익을 주는 내용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지금도 신규 직원을 뽑을 때 사내하청에서 40~70% 우선 채용하는데, 비조합원 중심으로 채용이 이뤄져 노조 탈퇴 등 비정규직노조가 약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신규 채용은 경력도 인정받을 수 없다.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건강권도 심각하게 무시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노동자들에 대한 삼성전자 측의 책임 회피가 그 하나의 예이다. 현재까지 약 20여명의 노동자가 백혈병 등 혈액암이 발병해 집단 직업병 의혹을 사고 있는 삼성전자반도체에 대한 1, 2차 역학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지만 모두 삼성 측의 책임이 뚜렷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리기도 했으나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공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백혈병 발병이 생산공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의 의뢰를 받아 1년여 동안 조사를 실시해 온 인바이론(Environ)사도 반도체 공장에서의 근무환경이 백혈병 등 림프조혈기계 암 발병과의 전혀 연관이 없으며, 사실상 자연상태의 발병률과 비슷하거나 그 이하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역학조사가 전적으로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이 제공한 자료와 정보에 의해서만 진행됐다"며 역학조사의 신뢰성 제고를 촉구했다.
재벌들이 공정거래를 위반하는 것도 문제이다. 2008년부터 2012년 8월까지 30대 그룹이 공정거래관련법을 위반한 248건(시정명령 부과사건)을 분석한 결과, 법을 가장 많이 위반한 그룹은 삼성으로 41건(16.5%)에 달했다고 밝혔다. 그 다음은 에스케이 31건(12.5%), 롯데 26건(10.5%), 씨제이 19건(7.7%), 엘지 18건(7.3%) 순이었다. 삼성은 41건의 법 위반건수 중 30건이 짬짜미(담합) 사건이었다. 나머지는 중소협력업체에 대한 불공정 하도급거래를 하다가 제재당하는 등 하도급법 및 다른 공정거래법 위반이었다. 과징금 부과액 기준으로는 에스케이가 55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삼성 2820억원, 지에스(GS) 2410억원, 엘지(LG) 960억원 차례였다. 대기업들의 그룹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는 대표적인 불공정거래 행위로 도처에서 지탄받고 있다.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는 총수 일가의 편법 재산 증식 및 상속을 위한 편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재벌총수의 이사등재율도 매우 낮은 것도 문제이다. 대기업집단 총수가 등재 이사가 아닌 경우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법상 등재이사가 아닌 사람도 경영권을 행사할 경우 사실상 이사로 간주해 책임을 묻도록 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총수의 업무집행 지시 사실을 입증하기 힘들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4월 말 현재 총수가 있는 재벌그룹 38곳(계열사 1413개)의 전체 등기이사 5844명 중에서 총수 일가는 535명으로 겨우 9.2%를 차지했다. 총수와 총수 일가의 이사 등재 비중은 각각 2.7%(157명), 6.5%(378명)였다. 총수가 이사로 등재한 계열사 비율은 11.1%(157개)였다. 삼성·현대차·에스케이(SK)·엘지(LG) 등 4대 그룹의 총수가 이사로 등재한 계열사 비율은 3.8%로 더 낮았다. 삼성, 현대중공업, 두산, 엘에스(LS), 신세계, 대림, 미래에셋, 태광 등 8개 그룹의 총수는 단 한곳의 계열사에도 이사 등재를 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재벌들은 사회적 책임은 등한시하고 있으나 비과세 감면 등의 혜택은 적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처음 3년 간 즉,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의 감면액은 10조 8,562억 원으로 나타났다. 전체 법인세 감면액 총합 21조 2,484억 원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것이다. 2010년 기준 개별 대기업집단의 법인세 평균 감면액을 살펴보면 30억 7천만 원으로, 전체 법인의 평균 감면액 1,682만원보다 182배가 높았다. 삼성전자의 경우 법인세 명목세율이 22%이나 각종 국세감면 혜택과 일부 감면제도의 최조한세율(14%) 적용 배제로 실효세율이 12%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Ⅳ. 재벌 폐해의 근본적 원인은 신자유주의적 개혁
재벌들의 각종 편법, 탈법, 불법적 행태들로 인해서 재벌의 존재 자체가 한국 경제에 해가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 따르면, 재벌은 하청기업의 단가를 수시로 인하하여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 여력과 유인을 제거함으로써 제조업 강국의 지반을 밑에서부터 무너뜨리고 있으며 고환율 정책까지 동원해서 얻은 막대한 이익을 자산투기(부동산과 금융)에 투입함으로써 자산버블의 형성에 일조했다. 수많은 가계가 고부채에 시달리고 있는데 지난 10년 동안 5대 재벌의 자산규모는 230조원에서 620조원으로 세배 가까이 늘어났고 순이익은 네 배나 증가했다. 일부 재벌은 관료와 검찰 및 사법부마저 장악했으나 이미 오래 전에 대마불사의 경지에 오른 재벌의 위기는 곧 시스템 위기를 불러오므로 국민들은 재벌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현재와 같이 재벌이 총수의 이익만 극대화한다면 사회의 양극화가 격심해지고 국가 전체는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즉 재벌 문제는 일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시스템 문제이다.
그렇다고 재벌을 사라지게 만들면, 예를 들어 재벌을 해체하거나 외국 자본에 팔아버리는 것은 어떨까? 실제로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는 위기에 처한 된 재벌을 해체하고 해외 자본에 매각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쌍용, 대우 그룹이 해체되어 각각 상하이-마힌드라, GM(지엠)에 팔렸고 삼성의 자동차 부문도 르노에 매각되었다. 문제는 해외자본에 매각된 기업들은 재벌보다 더욱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르노는 2눰. 년에만 10억 9100만 유로의 흑자를 냈고 닛산은 69억 달러의 흑자를 보는 등 호황이었는데, 르노삼성의 경우 2149억 원의 적자를 봤다. 왜 르노, 닛산과 르노삼성 가운데 르노삼성만 적자를 본 것일까? 이러한 상황은 르노삼성이 많은 부품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오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은 전체 부품의 15퍼센트를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는데 대부분 일본 규슈 억 지역으로부터 수입한다. 201 년에 르노삼성이 2149억 원의 적자를 보았을 때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부품값으로 지불한 금액만 1조 920억원에 달한다. 반면 . 년를 본 경우 일본산부품D것이다.%에 불과하다. 이것은 르노삼성이 성장할 경우 그 이익이 고스란히 해외로 빠져나가며 해외 부품업체들의 성장에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해외자본이 국내 재벌보다도 국내 경제 기여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환위기 이후 상위 재벌들의 집중도가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외환위기 직후의 구조조정 과정을 생각해보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동차 산업만 보아도 쌍용, 르노, 지엠이 해외에 매각되었는데 해외매각이후 이 기업들의 성장은 정체되었다. 해외자본은 국내 공장에 투자하여 고용을 창출하여 지역경제와 국가경제에 기여하기보다는 기술을 빼가기 일수였다. 따라서 자연히 투자를 많이 하고 신차를 많이 내놓는 국내 완성체 업체들의 약진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이 외국계 업체들보다 더욱 심하게 단가를 인하하고 비정규직을 많이 쓰기 때문에 기업의 수익이 올라가고 집중도가 늘어가는 것은 아닌가? 단가를 인하하고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것은 모든 기업들이 동일할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 국내 재벌들은 국내 투자를 하고 국내 부품업체들로부터 부품 공급을 받고 그를 통해 성장에 기여하고 고용에 기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절대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잘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재벌계나 비재벌계나, 국내 기업이나 외국 기업이나 우리나라에서 영업을 하면 다 비정규직을 많이 쓰고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에게 후하게 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권 저하, 중소기업 위기 등의 문제는 재벌을 쪼그라들게 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유연화 정책을 개선하고 공정 거래를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양극화의 문제도 상위 재벌들이 사라지면 해결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소득불평등도를 측정하는 지니계수는 외환위기 직후 갑자기 상승하여 지금까지도 떨어지지 않고 있다. 즉 외환위기 직후부터 지금까지 양극화 문제는 계속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양극화 문제의 발단은 외환위기 이후 IMF 하 신자유주의 개혁이다. 우선 막무가내식 구조조정으로 인해 실업자가 양산되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IMF의 개혁 요구에 적극 동조하여 관치경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논리로 많은 기업들을 살리지 않고 그대로 구조조정하거나 해외자본에 매각해 버렸고 그로 인해 많은 실업자들이 양산되었다. 대규모 구조조정의 논리는 관치경제 하에서 생존해왔던 비효율적인 기업들을 정리한 후 시장에 맡겨두면 적재적소에 자원을 배치하고 개인의 노동동기와 투자동기를 자극하는 시장의 활력이 작동하여 다시 투자도 늘어나고 효율적인 기업들도 만들어질 것이라는 논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활력이 잘 나타나지 않자 무리하게 벤처활성화 정책을 펴서 벤처거품만 만들었고 한번 사라진 기업들은 다시 재기하지 못했고 한국 기업생태계는 허리가 사라져 버린 상황이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환경 하에서 기업들은 세련된 ‘글로벌 스텐다드적 경영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대규모의 투자를 감행했던 기업들이 재무 건전성과 수익성 위주의 경영으로 전환하면서 투자에 신중함을 기하는 보수적 경영형태가 지배적이 되었다.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크게 하락하였는데 이는 외환위기를 경험한 기업들이 수많은 기업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안전 지향적 경영을 체질화한 데 따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수익성 위주의 경영은 자발적인 사업 구조조정 및 인력 구조조정을 촉진하였다. 사업 구조조정 측면에서는 수익률이 낮은 기존 사업을 매각하고 수익성이 높은 부문을 강화하는 상시 구조조정 체제로 돌입하였다. 인력 구조조정 측면에서는 대량 해고, 비정규직, 아웃소싱이 증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전반적으로 인력 절감형 경영이 자리 잡게 되어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종업원 수가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수익성 위주의 경영은 저부가가치 공정이나 가격 경쟁력이 저하된 제품라인을 인건비가 낮은 지역으로 이전하고 고부가가치 부문에 집중하는 전략을 급격히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환경은 특히 상위 재벌에게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상위 재벌들은 대우, 쌍용 등 경쟁 재벌들의 소멸로 국내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었으며 위기를 활용하여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선택과 집중을 함으로써 재무 구조를 개선할 수 있었다. 또한 노동비용 절감과 원화절하로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이를 핵심사업의 경쟁력 강화에 재투자하면서 다시 성장할 수 있었다. 국내 경쟁자들이 사라져 외환위기 이전과 같이 대규모 자본 투입을 통한 외형 확장 위주의 경쟁을 할 필요도 없게 되었으므로 상위 재벌들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소수의 핵심 사업에 집중하며 내실을 강화하였다. 우리는 상위 재벌들의 글로벌 기업들의 도약이 단지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을 착취한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삼성전자가 주요 IT분야에 대한 선제적인 기술 및 설비 투자를 단행함으로써 2000년 이후 급팽창한 IT시장에서 성과를 올릴 수 있었고 현대자동차가 글로벌화와 부품 모듈화를 추진하여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상황은 기업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고 이와 같이 유리한 환경에서 상위 재벌들은 한편으로는 어쨌든 경쟁력을 높였으며 그를 통해 이익률을 높였다.
그러나 기업들이 외환위기 이후 핵심 사업에 집중하며 투자에 신중해진 것이 한국 경제 전체에 좋은 일은 아니다. 기업들은 재무 건전성을 중시하고 수익성을 중시하게 되면서 투자 위험도가 높은 사업에는 이전과 달리 쉽게 뛰어들지 못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 제조기업의 투자율은 외환위기 이후 크게 줄었으며 투자율 감소로 성장률은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들은 이전보다 더욱 재무건전성과 수익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많은 기업들이 재무건전성이나 수익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투자, 예를 들어 해외 시장을 개척하거나 미래 유망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위험천만하게 여겨 피하고 쉬운 내수 시장에 주력하고 설비투자액이 많이 필요치 않은 소비형 사업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특히 재벌들이 그동안 중소기업들, 중소상인들이 담당해 왔던 영역에 침입해 들어오는 이유 중 일부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기업들을 이전보다 수익에 민감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은 ‘글로벌 스텐다드’형으로의 금융 시스템의 변화였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들은 다수가 구조 조정되고 합병되어 대형화하였으며 이후 해외자본에 매각당해 그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 결과 소위 선진적인 은행 경영 방식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수수료 인상, 주로 부동산담보대출, 가계대출의 증가였을 뿐 기업들의 실물 투자가 증대한 것은 아니었다. 외국자본에 의해 장악된 국내 은행들은 신용도에 따라 대출금리를 차별화하기 시작했고 기업 대출보다는 가계 대출에 더욱 몰두하게 됨에 따라 투자 재원을 조달함으로써 국가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는 원래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였고 그로 인해 많은 폐해들이 나타나고 있다. 서민금융을 담당하는 은행들은 많이 문을 닫았다. 서민과 중소기업의 상황이 외환위기 이후 열악해진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서민은행과 지방은행의 몰락과 시중은행의 대형화, 이후 은행의 문턱이 높아지고 서민과 중소기업은 약탈적 대출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금융시스템이 변한 것이다.
주식시장의 급속한 팽창도 경제 성장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주자본주의의 도입으로 기관투자가들의 영향력이 커지게 된 것이 기업들로 하여금 수익성을 중시하고 투자에 소극적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이야기된다. 기업들이 단기 수익성 위주로 운영되어 장기적 위험 투자가 활발하지 않게 된 것이다. 물론 재벌들이 기관투자가들의 영향력을 크게 받게 된 것이 기업 경영방식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면은 있다. 한국에서는 재벌총수들이 여전히 그룹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수주주의 권한을 강화하고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했지만 재벌 총수의 지배권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주주자본주의가 도입된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기업들이 현금보유를 늘리고 자사주 보유가 늘리는 대신 투자는 줄이고 있다. 전형적으로 경영권 탈취를 염려하는 주주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모습들이다.
주식시장이 경제 성장에 그다지 기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따로 굴러간다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주식시장이 투자 자금의 조달과 상관없이 팽창하고 주가각 상승함에 따라 기업들마저도 주식시장에서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자금을 굴리게 되는 등 가계, 기업 모두 금융 투기에 몰두하게 되었다. 한편 주식시장의 급팽창과 자본자유화를 배경으로 한국 사회에 영향력을 높이고 있는 사모펀드들은 페이퍼컴퍼니를 앞세워 발전소 사업이나 전력산업, 사회기반시설 건설에까지 뛰어들고 있는데 오로지 수익만을 노리는 사업행태로 인해 경제의 근간을 불안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나빠지고 특히 상위 재벌들의 상황이 매우 좋아졌으나 그것은 구조조정을 통해서 많은 기업들을 소멸시키고 노동을 유연화하고 상위 재벌들에게 더욱 많은 자유를 준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더욱 근본적인 원인이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상위재벌들에게는 좋은 것이었으나 대다수 노동자들과 중소기업들에게도 좋지 않은 것이었다.
Ⅴ. 새로운 경제모델의 열쇠는 복지 강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재벌개혁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재벌이 해외자본이나 중소기업들보다 더욱 비도덕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중소기업들도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노동권을 무시하고 편법, 탈법, 불법을 저지른다. 재벌을 포함한 모든 기업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하려면 노동권을 지키고 공정거래를 하라고 법적으로 강제하고 지키지 않을 때에는 무겁게 처벌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 노동권이 무시되는 것은 지금까지 외환위기 이후의 모든 정부들이 유연성을 강화하면 고용이 창출될 것이라는 논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와 관련하여 더욱 큰 문제는 외환위기 이전에는 그나마 재벌이 과다 투자하는 것이 문제가 될 정도로 투자에 열심이었는데 외환위기 이후에는 그러한 모습이 사라졌다. 재벌이 가지고 있는 장점, 즉 내부 자원을 활용하여 새로운 사업, 특히 해외시장 개척에 뛰어드는 역동성이 외환위기 이후 발현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분위기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아직도 완전한 선진국이 아니면 많은 산업 분야에서는 여전히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하는 후발국의 위치에 있다. 재벌들이 중소기업 영역이 아니라 선진국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분야로 진출하고 중소기업을 이끌 수 있도록 정부는 유도해야 한다.
그러한 틀에서 보자면 재벌개혁의 방향은 당장은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를 강화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에 진입하지 못하게 진입규제를 하며 기업집단법 제정을 통하여 현재의 기업별 규제에서 제대로 된 집단별 규제로 전환하며 그럼으로써 기업 집단을 통제하는 재벌총수 일가에게 책임을 지우는 개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외 순환출자, 출자총액, 금산분리 문제의 경우 현재보다 크게 강화한다고 해서 한국 사회의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단기적 이윤 창출을 목표로 하는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그와 관련하여 경제에 기여하는 금융 시스템은 무엇인가, 자본과 노동의 이해가 균형을 이루는 노동의 유연안정성 모델은 무엇인가,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결국 진정한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에게 강요되었던 신자유주의적 모델을 폐기하고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새로운 대안 모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경제민주화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재벌개혁 이후의 한국경제에 대한 뚜렷한 상이 있어야 한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는 돌이켜보면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과도했던 노동대한 뚜, 영미식 금융시스템의 도입, 주주자본주의의 도입, 금융허브화 정책의 추진, 공기업 민영화 등이 두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말해준다. FTA 정책의 추진도 문제였다. FTA 정책 이후 한국 정부는 중소상권을 보호하는 정책도,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정책도 모두 시행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 친화적 정책을 노골적으로 시행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부일 뿐 이전의 소위 진보정부들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박정희 식의 발전국가 모델도 아니고 영․미식 신자유주의적인 모델도 아닌, 성장과 분배를 선순환시키는 새로운 대안모델은 무엇인가? 지난 몇 년간 진보적 학자들 사이에서 이야기되었고 점점 그 영향력을 높여 가는 대안 모델이 바로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이다. 그리고 그 모델에서는 보편적 복지가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가져다주는 열쇠이다. 복지의 강화야말로 지금의 한국 경제가 당면한 저성장, 양극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진보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중소기업들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능력 있는 인재를 구하기 어렵고 어렵게 구해서 훈련시켜 놓은 인재들은 대기업에 빼앗긴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중소기업들의 기업복지가 약하다는 것에 있다. 따라서 국가복지가 강해질수록 굳이 대기업에 가야할 이유가 줄어들 것이고 인재들이 중소기업으로 가게 되면 중소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견인할 수 있다. 국가복지의 강화는 이렇게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로 연결될 수 있고 일자리 창출의 수단도 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효과들로 인해 바로 고복지를 하는 북유럽 국가들이 고정상- 고분배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모델에서는 고복지가 경제모델의 근간을 이루고 그 위에 노동, 기업, 금융 정책들이 정합적으로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고복지가 들어선다면 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도 해소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업들도 자체 복지 제도를 높게 유지해야 할 의무에서 해방될 것이다. 이와 같이 복지 강화를 통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추구하게 되면 그 외의 다른 과제들도 해결책을 찾는 것이 수월해진다. 예를 들어 한국 경제는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약하다는 점, 즉 유독 영세자영업자들이 많다는 약점이 있는데 이들의 삶을 개선시키고 서비스업을 발전시킬 대책도 필요하며 이윤 이외의 다른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늘려야 한다. 이런 과제들이 모두 복지가 강화될 때 더욱 쉽게 그 해결책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세 명의 대선 후보들이 모두 복지를 주요 의제로 삼고 있는 것을 그런 면에서 좋은 신호로 해석할 수 있을까? 세 후보 모두 보편적 복지를 주요 아젠다로 내걸고 있으니 누가 되든지 이제 한국도 복지가 성장을 이끄는 그런 모델로 전환하게 될 것인가? 예를 들면 문재인 후보의 경우 출마 선언문을 통해 ‘공평과 정의에 바탕을 두고 성장의 과실을 함께 누리는 나라’,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성장 전략 추진’을 추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로 각 후보들이 내놓은 복지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국민부담률의 대폭적인 확대 없이 복지 국가를 하겠다는데 그 정도로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고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결국 경제민주화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대전․충청지역 청년실업과 대안
장 주 영 (대전청년 유니온 위원장)
최근 몇 년 동안 청년실업 문제가 대표적인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전연령 평균 실업율 보다 청년층의 평균 실업률이 약 두 배 가량으로 나타난다. 대전충청지역 중 특히 대전지역은 청년들의 일자리가 안정되지 못 하고, 지역에 정착하기 힘든 구조로 되어있다. 그러다보니 다른 지역에 비해 청년실업률이 높게 나타난다. 전연령 평균실업률 역시 전국평균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만 15 ~ 29세 실업률도 전국평균을 웃돌고 있다.
그림 . 연도별 실업율 현황 (출처: 통계청 KOSIS)
하도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팔을 걷어붙이고 청년 실업을 해결하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들은 표면적인 실업률만을 낮출 뿐, 실제로 실업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매우 미미한 형편이다. 대전광역시는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일환으로 청년창업 500프로젝트와 해외연수·취업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중소기업의 인턴 채용과 청년층을 이어주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정책 추진은 실업문제의 해결보다는 지방자치단체가 이런 식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는 경제적 구조에 원인이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전에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 청년들은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취업준비를 하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청년들은 실업률에 포함조차 되지 않는다. 잠시라도 일을 했던 사람들은 실업자에 포함되지 않으며, 구직활동 대신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실업자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구직활동을 할 수 없었던 사람 역시 실업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수치로 나타나는 실업율보다는 청년들이 어째서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취업 이후에 어떤 노동환경에 처해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Ⅰ. 취업용 스펙 만들기
요즘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소위 ‘스펙(specification, 보통 장비나 기계의 성능 및 구성을 나타내는 말이나, 한국에서는 사람의 학벌, 어학 점수, 자격증, 어학연수 여부, 인턴쉽 여부 등을 가리킨다.)’이 필요하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의 조사에 따르면 해마다 스펙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상반기에는 토익 688점, 학점 3.4점(만점 4.5점), 자격증 평균 1.8개였던 평균 스펙이 2012년 상반기에는 토익 707점, 학점 3.5점(만점 4.5점), 자격증 평균 2개로 늘어났다.
그림 . 취업자 스펙 상승 현황 (출처: 사람인)
이러한 스펙 쌓기를 비단 취업을 위한 청년층의 과욕이나 실력 부풀리기로 취급하기엔 무리가 있다. 가장 기초가 되는 스펙인 학력에 따른 연간 임금 차이를 살펴보면, 대졸 노동자 연간 임금이 고졸 노동자 연간 임금의 평균 1.60배로 나타났다. 학력에 따른 임금 차별 뿐만 아니라 향후 노동현장에서 승진 등에 차별을 받게 되므로 높은 액수의 대학 등록금을 감수하며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 피부로 느끼게 되는 차별이 대학 진학을 비롯한 스펙 경쟁을 불러온다.
그림 . 고졸자/대졸자 평균 연간 임금 현황 (출처: 임금근로시간 정보시스템, 고용노동부)
현재 대학진학률은 2008년 83.8% 이후 완만히 감소하여 2012년에는 72.5%에 달했지만, 여전히 OECD 평균 56% (2011년 기준)보다 매우 높은 편이다. 학력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대학 졸업자가 과잉이 되므로, 학력 외 스펙이라는 또 다른 차별의 기제가 생겨난다. 이는 본래 대학이 직업교육소가 아님에도 대학을 나와야 대우가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왜곡된 노동에 대한 인식 때문이기도 하고, 기업이 직무 적합 여부를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에 스펙이라는 수치화된 자료를 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최근에는 인턴 경험 유무를 채용 시 가장 먼저 보는 조건으로 꼽기도 하지만, 인턴 채용 시에도 스펙을 요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스펙 인플레이션은 비단 좁아진 취업문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도 부의 대물림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청년유니온이 올해 4월 말부터 5월 20일까지 대학졸업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기업들이 공통으로 요구하는 스펙인 학력/어학/자격증/어학연수 등의 스펙을 만드는데 들어간 비용을 조사한 ‘이력서 가격’에 따르면 평균 이력서 가격이 4,269만원이었다. 이력서 조사에 응한 사람 중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의 평균 임금으로는 한 푼도 쓰지 않고 32개월 동안 모아야 하는 돈이며, 정규직으로 채용된 청년의 경우 평균 임금이 200만 7천원이므로 꼬박 26개월을,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청년의 경우 평균 임금이 144만원이므로 꼬박 36개월을 모아야만 하는 돈이다.
취업에 성공해도 감당하기 힘든 스펙 만들기 비용인데, 과연 청년들이 대학에 다니면서 이렇게 스펙을 쌓을만한 비용을 마련할 수 있을까? 결국은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하거나, 빚을 내서 충당하는 방법 뿐 이다. 굳이 다른 스펙 외에 학점만 따져보더라도, 수업을 듣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남는 시간을 쪼개어 과제를 하고 학과 공부를 하는 사람보다, 학과 공부에 충분히 시간을 쏟고 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높은 학점을 얻을 거라는 사실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나마 노동환경이 나은 대기업에 취업하려는 대졸 청년들의 사정이 이럴진데, 스펙을 쌓을 수도 없는 고졸/중퇴 청년의 경우는 더욱 열악한 사정에 몰려있을 것이다.
굳이 스펙쌓기가 아니더라도 대학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생긴다. 학자금 대출 비율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청년층 신용불량(유의자) 비율과 정부 학자금 대출 연체금도 증가하고 있다.
구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8월
인원
전체(명)
10,250
22,142
26,097
31,363
37,431
08년 대비 증가율(%)
100
216
255
306
365
금액
금액(억원)
461
1,126
1,362
1,656
2,099
08년 대비 증가율(%)
100
244
295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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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 정부 학자금 대출로 인한 연도별 신용유의자 현황
(출처: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박홍근 의원실)
한편, 학자금 대출 여부가 향후 노동시장에서의 지위를 결정하기도 한다. 학자금 대출자의 경제활동참가율이 87.96%로 미대출자보다 1% 높게 나타나는데, 정규직 비율은 대출자가 74%, 미대출자가 79.9%로 평균 5.9% 낮게 나타났다. 또한, 월평균 급여에서도 차이가 발생하였다. 대출자는 169만원, 미대출자는 179만원으로 10만원이 대출자보다 많았다. 학자금 대출로 인한 형평성보다 열악한 일자리에 급하게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며,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시점 그 이전에 이미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구조에 놓여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Ⅱ. 쌓은 스펙이 쓸모없는 일자리
이렇게 취업에 필요한 스펙과 비용은 높아져만 가는데, 정작 취업을 한 이후에는 스펙을 써볼 곳이 거의 없다. 모든 기업이 해외 업무를 하는 것도 아니니 높은 토익 점수가 쓸모없고, 모든 업무에 자격증이 필요하지도 않다. 한편, 노동부의 직업능력지식포털인 HRD-Net에서 제공하는 직업교육 내용을 살펴보면 대졸자들의 높은 스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저임금 단순 일자리와 관련된 교육이 대부분이다. 스펙을 쌓는데 들인 노력과 비용 모두 쓸모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충분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부정책이 수립되어야 하는데, 단기간 창업을 통해 수치상의 실업률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정부정책이 수립되어 있다.
이러한 정책의 문제는 청년들을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로 유인할 뿐만 아니라,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선 자영업자의 길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노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실업’을 줄이기 위한 방안에 올인할 뿐이다. 눈에 보이는 실업률을 낮추는 것보다, 청년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경제적 토대를 다지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공기업 포함 300인 이상 기업의 고용비중이 겨우 12% 남짓하다는 사실을 볼 때, 대부분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대개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자 사업장에 집중되어 있는 매우 열악한 일자리들이다. 올해 8월 보도된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 1인당 월평균 수입이 116만원으로, 대부분 부채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전청년유니온이 6월에 발표한 대전지역 청년 노동실태조사 자료에서는 10인 미만 사업장이 73%를 차지하였다.
최근 10년 동안 5대 재벌집단의 자산규모가 230조원에서 620조원으로 늘어난 것을 볼 때, 열악한 청년 노동 현실은 재벌에 이윤이 모두 몰리고, 고용을 축소해가며 이윤을 증가시키는 재벌 위주 경제 체계가 바뀌지 않는 한 개선되기 힘들 것이다. 특히, 재벌이 고용을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영세 자영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프랜차이즈의 경우, 대부분의 영업 이윤을 본사에서 가져가고 있으며, 본사에서 최저임금만을 지급하도록 지침을 내리는 등의 방식으로 재벌만 배를 불리고 있다. 영세자영업이 아닌 중소기업 역시 재벌이 목줄을 쥐고 있는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재처럼 대부분 중소기업이 재벌 하청업체로서 존재하고, 전체 이윤의 40%를 재벌이 모두 가져가는 경제구조에서는 자생력을 갖기 힘들다.
기성세대들은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 가지 않는다고 질책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그러한 질책을 받을 대상은 오히려 재벌, 그리고 재벌과 관련된 기업들이다. 중소기업에 취업한 주변 청년들 중 임금체불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며, 두 세 사람이 해야 할 몫을 혼자 하기에 엄청난 노동 강도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숙련도, 노동자의 육체적/정신적 건강 등에 대한 고려보다는 일종의 부품처럼 여기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생각과는 맞지 않거나, 너무 강한 노동 강도에 질려 그만두게 되면, 그러한 노동조건을 만들어 낸 기업이 아닌 그만둔 청년 노동자들에게 비난이 집중되곤 한다. 노동기본권이 무시되는 환경에 대한 성찰과 개선이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기성세대에 비해 정신력이 약하다는 등 ‘요즘 애들은...’이라는 말로 얼버무릴 뿐이다.
특히, 취업 당시에 약속했거나 근로계약서에 명시한 직무 이외에 다른 직무들을 추가로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채용 공고에 기재해두었던 복리후생, 근무 시간 등에 대한 내용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일단 뽑아보고 격무 및 노동환경에 적응하지 못 하고 그만두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뽑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업이 채용 공고에 기재한 내용과 실제 노동 환경 조건이 다른 경우에 이를 규제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 근로계약도 엄연한 계약임에도 기업 측의 일방적인 계약 내용 변경이 취업 노동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협력업체라 해도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일하는 청년들의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하지도 않고, 한 사람이 견뎌내기 힘든 노동 강도를 강요하면서, 근성이 부족하다, 눈높이가 너무 높다고 얘기하는 건 대체 어느 시대 이야기인가. 이번 달 구미의 한 공장에서 불산 가스 누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사망한 노동자 중 대부분이 20, 30대 청년 노동자였다. 지난 달 정읍의 LS그룹 계열사에서 일어난 용광로 관리부실 산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들도 20대 청년 노동자였다. 2010년 9월에 용광로에 빠져 목숨을 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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